아무리 글 쓰는 것이 직업이라 할지라도 하루에 한 자도 못쓰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을 위해서, 별도의 기능이 완벽히 제한된, 말 그대로 글 쓰는 것만 되는 기기가 하나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프리라이트라는 제품이 있더라.
e-ink를 사용하는 패널과 키보드로만 이루어진 기긴데 초안을 작성해서 메일이나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기능 빼고는 아무것도 없단다.
이거다, 싶어서 가격을 알아보니 직구하면 70만원 초반대로 구매할 수 있는 듯.
10월 즈음하여 ware house sale도 있고, 11월 말엔 블프 세일도 있다. 물론 해마다 기업 사정에 의해 변동되는 부분도 있을 거다.
암튼 나는 웨어하우스 세일 기간에 리퍼비쉬 제품이나, 아주 약간의 하자가 있는 제품이라도 기능만 괜찮으면 저렴히 구매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아빠 시술일과 겹쳐서 하루 놓친 사이 재고 소진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빠 시술이 잘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이왕이면 새제품으로 블프 세일 때 사자,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웬걸?
중고랜드에 완전 싸게 매물이 올라온 것이다. 새벽 즈음 그 게시물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는데, 이미 연락을 한 구매자가 있어서 포기.
그리고 점심 때 다시 확인해보니 게시글이 그대로 있었다. 그것도 가격은 다운된 채로.
홀린듯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고,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물어도 싫은 내색 않길래, 사진 인증도 부탁했는데
요청하는 대로 척척 사진을 보내주는 거다 - 물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주 엉성한 합성사진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증 사진을 받고,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판매자가 대뜸 어떤 은행 어플을 이용할 것이냐 물어왔다.
나는 내 수수료를 걱정해주는 줄 알고 ㅋㅋ 수수료 면제니까 계좌를 그냥 불러달라고 했다.
정말 입금액을 입력하고 은행 계좌까지 다 입력하고 나서, 그때야 엉성한 사진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태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좌번호를 복사해 검색을 해봤더니, 아주 핫한 사기꾼의 계좌 정보란다.
그리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사기는 안 당하는 게 제일 좋다.
일단 사기를 당하면 자책하게 되고, 우울감에 빠지고, 이러저러한 소송과정에 들어갈 시간과 비용, 그리고 심적 고통을 따져보면서 심정이 복잡해 질 것이다.
끝내 신고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지.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떠올라 괴롭기도 할 거다.
암튼 나는 그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리고 프리라이트 트래블러는 블프세일때 직구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
프리라이트 스마트나 알파도 끌렸지만, 아무리 봐도 트래블러가 나에겐 제격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액정도 그나마 큰 제품이라, 일단 사고 나면 아주 열심히 잘 쓸 계획이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다 갈아엎기로 다짐을 하고, 편집자에게 말씀도 드렸다.
그런데 동력이 안난다. 프리라이트 트래블러는 그만큼의 동력을 나에게 불러 일으켜 줄 것이다.
$499의 기적을 확인해 보자.
없을 때도 잘 썼는데, 이번엔 왠지 정말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것도 많고, 써야 할 것도 많은데 당장 지금 쓰라고 하면 망설여지는 건 뭘까?
연말 특수일까?
당장의 마음을 달래려고 또 소비 작전을 펼친다.
북밴드 두 개,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귀여운 북커버와 키링, 그리고 독서 테마의 마테 소분컷.
어림잡아도 십만원인데, 내 정신건강을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큰 비용도 아닌 것 같다.
요새 정말 글 쓰기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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