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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게 되는 말들 소설을 쓰면서 잘 안 쓰게 되는 말들이 있다.너무 현대적인 말들이다.고전문학을 즐겨 읽는 나는 지금보다 훨씬 옛시대의 정취에 물들어 있었다.흙길을 걸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마을마을의 주점에서 흥청망청 취하고여인숙에 머물면서 허연 빵을 뜯어 먹고, 그런 굶주린 삶에서 번뜩 떠오른삶의 진리를 껴안고 고향으로 달음질 치는….항상 그랬다. 빨간 머리 앤의 초록 지붕아래 다락방을 꿈꿨고,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여학교 기숙생활을 그렸고,내 책상 아래로 들어가 알록달록한 세계전집을 끌어안고 아주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아빠가 출퇴근 하는 시간은 정확했고, 엄마는 항상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친구들이랑 놀다 오면 언니랑 영어 공부를 하고 드라마를 보고 졸린 눈으로 또 책을 보다 잠들고.요즘엔 아이들도 스마트폰.. 2024. 12. 17.
노벨상 시상식에서 울려퍼진 루스 깁트의 노래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로 나는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작가님을 칭송하고 있다.글을 쓸 때 어떤 도구를 쓰는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또 좋아하는 소설과 철학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물론 조금만 공을 들이면 다 알 수 있는 시대라,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매체를 통한 정보가 아니라더욱 사적이고 깊은 정보다.한강 작가님이 개인 채널을 통해 일상을 알려주시면 좋겠다. 이미 있을 수도 있지만 ㅋㅋ암튼 요즘 한강에 빠져 노벨 시상식까지 찾아보는 나다.그리고 작가님의 시상 시간에 왔을 때 루스 깁트의 춤곡이 울려 퍼졌다.암바르발리아 70번.동화적이고 서정적이고 몽환적이고, 딱 한강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관을 내포한 또 하나의 신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루스 깁트가 여성 작곡가라는.. 2024. 12. 12.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리고 요며칠간의 계엄 트라우마에 대하여 며칠 동안 새벽까지 깨어 뉴스를 보고 있었다.사상초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려 당연한 것이 되고 나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그 동안의 평온함은 하룻밤사이 과거가 되었다가 다시 현재가 되었다.당장에 포탄이 아파트 외벽을 깨뜨리고,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두꺼운 이불을 창문에 덧대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국회는 이미 많은 상흔을 입었다. 문이 박살나고 창문이 깨졌으니까.매년 5월이면 광주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한참이 지난 오늘에야 그 말이 선득하게 느껴진다.특수부대들이 들어찬 국회 너머로 초로의 인간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규탄을 한다.그 사람들 주변으로 10만의 국민이 모여든다.어쩌면 끔찍한 사변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아이러니하게도 계.. 2024. 12. 8.
문창귀인과 학당귀인? 문창귀인과 학당귀인이 있다고?대학생 때 일이다. 친구랑 함께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취업 시즌도 되고 해서 싱숭생숭한 마음에 직업운을 보려고 했다.그런데 점 봐주시는 선생님께서 이러는 거다.“와. 이 친구는 문창귀인이랑 학당귀인이 다 들어가 있네. 글 좀 쓰겠다?”대학 시절 내내 레포트는 무조건 내가 썼다. 해피캠퍼스? 이런데서 사다 적당히 베껴서 가짜 글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동양사상 교수가 수업중에 내 이름을 호명하는 거다.이 사람 누구야? 글 좀 쓰네?점쟁이가 말한 대로 똑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들어본 적 있었던 나는 문창귀인이 뭔지 학당귀인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쉽게 말해서 학당귀인은 학문적인 글을 쓰는 사.. 2024. 11. 8.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의 힘, 사기꾼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아무리 글 쓰는 것이 직업이라 할지라도 하루에 한 자도 못쓰는 날도 있다.그런 날을 위해서, 별도의 기능이 완벽히 제한된, 말 그대로 글 쓰는 것만 되는 기기가 하나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다.이리저리 알아보니 프리라이트라는 제품이 있더라.e-ink를 사용하는 패널과 키보드로만 이루어진 기긴데 초안을 작성해서 메일이나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기능 빼고는 아무것도 없단다.이거다, 싶어서 가격을 알아보니 직구하면 70만원 초반대로 구매할 수 있는 듯.10월 즈음하여 ware house sale도 있고, 11월 말엔 블프 세일도 있다. 물론 해마다 기업 사정에 의해 변동되는 부분도 있을 거다.암튼 나는 웨어하우스 세일 기간에 리퍼비쉬 제품이나, 아주 약간의 하자가 있는 제품이라도 기능만 괜찮으면 저렴.. 2024. 11. 7.
나는 왜 사는가, 이것저것 소비일기 진짜 많이도 샀다. 필요에 의한 소비라면 합리화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뭐 한두 개라야지…지금 내 방은 한정판이라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나빠서, 공모전 합격해서, 원고료 나와서, 출간 계약해서, 어쩌구 저쩌구 명목을 붙여 산 것들로 넘쳐나고 있다.분명한 것은 소비로 인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사고, 또 사고, 기어코 있던 걸 팔면서까지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일까?단순히 기쁨을 산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아니다. 아직까지는 전혀 모르겠다.이런 다이어리들이나, 커버들을 다 쓰는 것도 아닌데 천장에 꿰어놓은 굴비 쳐다보듯 진열해두고 보기만 하면서 내가 얻을 것이 뭐란 말인가.남들에겐 없는 한정판을 가진다고 우쭐한 기분이 드는가 하면 그것도 아.. 202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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