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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는가, 이것저것 소비일기

by 문맹 202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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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많이도 샀다. 필요에 의한 소비라면 합리화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뭐 한두 개라야지…
지금 내 방은 한정판이라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나빠서, 공모전 합격해서, 원고료 나와서, 출간 계약해서, 어쩌구 저쩌구 명목을 붙여 산 것들로 넘쳐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소비로 인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사고, 또 사고, 기어코 있던 걸 팔면서까지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일까?

단순히 기쁨을 산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

아니다. 아직까지는 전혀 모르겠다.
이런 다이어리들이나, 커버들을 다 쓰는 것도 아닌데 천장에 꿰어놓은 굴비 쳐다보듯 진열해두고 보기만 하면서 내가 얻을 것이 뭐란 말인가.
남들에겐 없는 한정판을 가진다고 우쭐한 기분이 드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진열만 해두다 겨우 꺼내 쓰는 것들도 흠집이 날까 두려워 속지를 빼내어 필기를 한다. 진짜 미친 거다.

도구들을 샀으면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목적 없이, 이유 없이, 용도 없이 사제낀 것들이 딱히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엔저 현상이 나를 부추긴 것도 있다. 100엔이 850원쯤 하던 때, 한정판 커버를 아주 싸게 구매하고 나서, 배송료 아낀답시고 하나 둘 장바구니에 넣어둔 것을 결제하면서
나는 돈을 쓰고도, 돈을 아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원래는 미국이나 유럽의 다이어리 커버를 수집하는 것이 내 취미였는데, 달러는 비싸고, 유로는 더 비싸고 갈 곳 잃은 나의 지갑이 열린 방향은 가깝고도 먼 섬 쪽이었다.

게다가 내가 찾아 헤매던 호보니치의 오래된 커버들이 무려 미개봉 신품으로 5000엔 6000엔에 올라오는데 그걸 안사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매물이 뜨면 지르고 보는 일상이 주욱 이어지고 말았다.

솔직히 이런 거 사서 쌓아두는 거?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등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다.
머리로는 알면서 왜 손가락은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된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이런 문구류를 사모으는 것을 덕질하듯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고 어떤 넘버가 최고니, 어떤 배우님이 제일이니 소리 높여 외칠때,
건강을 챙긴다며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하고, 짐 연간 회원권을 끊을 때,
모 아이돌 콘서트에 간다고 밤새 클릭질을 해댈 때,
나는 이태리 소가죽 커버나, 반들반들한 폴리 커버를 주문하느라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볼펜, 만년필, 떡메, 스티커,  빈티지 배경지(심지어 엑스나 블로그를 통해 작가에게서 직접 구매함), 마테 등등.
아기자기한 문구류에 매료되어 정신 못차리고 살았다.

아주 목 아래까지 물욕으로 차 어푸어푸 개헤엄을 치면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면서,
방 안엔 문구류로 가득찬 상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5층탑을 쌓을 때까지 그짓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데 공모전에 덜컥 당선이 된거다.
무려 우수상.

소설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려던 적은 없다. 그러나 책과는 항상 가까이 지냈다.
자연히 글을 썼고, 당연히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상을 받았다.

나는 그간 모았던 문구류들을 쉽게 말해 땡처리하기에 이르렀다.
아주 희귀한 한정판들은 그대로 끌어안고 있지만,
없어도 되는 것들은 다 팔았다.

그러니 여유가 생겼다. 떙처리 했으니 금전적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팔고도 찔끔찔끔 구매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나.
이제는 완전한 과소비에 눈을 떴다.
아이패드, 아이폰, 맥북, 애플펜슬, 그리고 고가의 기계식 키보드들.
그렇다. 나는 그냥 소비중독자였다.

그나마 공모전 합격했다고 상금을 꽤 많이 받아서 죄책감은 덜했다.
아이패드는 소설 구상하는 데 쓰면 되고, 맥북은 소설 쓰는 데 쓰면 되고, 아이폰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수집할 때 쓰고,
타이핑할 때의 감도를 따져 키보드도 여럿 두고.

겉으로만 ‘소설가’처럼 잔뜩 치장을 했다.
다이어리들은 진짜로 쓸데가 없었다면 그나마 이 고가의 장비들은 소설 쓸 때 능률을 높여준다.
그래, 그것으로 됐다.

그리고 대망의 소비끝판왕 등장!

바로 #오닉스팔마 다.
이 기기로 말할 것 같으면 바형 이북리더기.
핸드폰처럼 생겼지만 e-ink를 탑재해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고, 종이 위에 잉크로 글을 쓴듯 아주 눈에 편한 독서 환경을 제공해 주는 전자책 단말기다.

어디든 들고다니면서 독서를 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팔마의 진가는 눕독에 있다.

자기 전 독서할 때 정말 이만한 게 없다.

나는 지금 리디페이퍼4, 교보샘 7.8 2세대, 크레마 모티프와 오닉스 팔마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상황별, 장르별로 아주 기가 막히게 돌려쓰면서 새로운 기기를 들이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다.

사실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소설가에겐 이북리더기 딱 하나, 그리고 노트북, 그리고 키압이 낮은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아이패드 프로, 아이패드 미니, 아이폰 이런 것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고.(난 다 있음^^)


이런 거 다 있어도 다 집 안에서만 쓰고 밖으로 들고 나가지도 않고, 친구나 동료들에게도 유치하게 느넨 요런 거 없지? 말하고 다니지 않으니
과시형 소비는 확실히 아닌데, 나는 왜 살까?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딱히 얼리어답터도 아니요, 오히려 기계치에 가까운 사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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